[앵커] 현미경의 발명으로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를 탐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나노물질의 움직임도 순간 포착할 수 있는 4차원 전자현미경까지 개발돼 새로운 미시세계의 문이 열렸다고 하는데요. 오늘 <과학의 달인>에서는 ‘특별한 4차원 전자현미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과 권오훈 교수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전자현미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을 고해상도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인데요.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기존의 전자현미경보다 발전된 4차원 전자현미경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3차원도 아니고 4차원이 앞에 붙어 있는데, 기존 전자현미경과 어떻게 다른 건가요?
[인터뷰] 일반적인 현미경은 평면적인 물질의 사진이나 3차원 구조를 찍을 수 있는 반면에, 4차원 전자현미경의 경우 빠르게 움직이는 물질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앵커] 네
[인터뷰] 즉, 공간에 해당하는 3차원에 시간 차원을 더해 4차원 전자현미경, 혹은 초고속 전자현미경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쇼트트랙 결승점을 통과하는 사진을 찍는 것 같이, 4차원 전자현미경은 최대 펨토초 단위의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요. 펨토초란 시간의 단위로 천조분의 1초를 뜻하고, 물질이 움직이는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기본이 펨토초이기 때문에 펨토초 단위로 물질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처럼 4차원 전자현미경은 나노물질이 빠르게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고 선명하게 찍을 수 있고, 물질의 변화과정을 동영상으로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러니까 4차원 전자현미경은 마치 연속 사진을 찍는 것처럼 화학반응 같은 물질의 변화를 모두 촬영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신 거군요. 그렇다면 이 4차원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밝혀낸 현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뷰] 여러 연구가 있지만, 그중에서 금 나노 입자의 진동 모습을 최초로 실시간으로 촬영한 연구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기존의 분석법으로는 매우 작은 나노입자 하나하나를 선택적으로 연구할 수가 없어서 주로 백만 개 이상 모여 있는 군집의 거동에 관해서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나노입자 하나의 성질을 유추해 왔는데요. 울산과학기술원에 설치한 4차원 전자현미경을 활용하면 최고 수준의 해상도로 각각의 나노입자의 고유한 움직임이나 성질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금 나노입자는 빛에너지를 받으면 진동하며 열에너지로 변환하는데, 너무 빠르게 진동하기 때문에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빛에너지가 어떻게 열에너지로 변화해서 어떤 물리적 화학적 현상을 유발하는지 연구해 이에 관한 기초지식의 폭을 넓혔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예전엔 숲을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나무를 한 그루씩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렇게 작은 나노물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인터뷰] 다양한 물질의 구조를 밝히고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과학의 출발점입니다. 현재 우리가 지닌 과학 지식의 상당 부분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평균적인 성질에 기반을 두는데요. 현재 봉착한 과학적 난제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원자, 분자, 나노물질 수준에서 감춰진 성질을 밝혀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능을 지닌 물질이나 소자 개발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나노물질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모든 연구의 근간이다, 이런 말씀이신 거군요.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4차원 전자현미경, 개발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운 점이 있으셨나요?
[인터뷰] 여러 난관이 있었는데요. 매우 정밀한 장비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했고, 그리고 온도나 습도 변화에 민감해서 온도는 0.5도 이내, 습도는 항상 25% 이하를 유지해야 하고 건물이나 외부의 미세한 진동도 최소화해야 했어요. 그래서 건물 지하 맨 아래층,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어렵게, 어렵게 찾아서 겨우 설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4차원 전자현미경을 개발할 때는 기존의 상용 전자현미경을 구매한 후 다시 뜯어 개조하는 작업을 거치는데요. 멀쩡한 고가의 정밀 장비를 분해하고 다시 개조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계획한 대로 잘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심적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또 찰나의 순간을 찍기 위해서는 레이저빔이 전자현미경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요. 이후 시료에 정확하게 조사를 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전자현미경이 쇠로 덮여 있어서 현미경 안을 눈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막혀 있는 상태에서 빛을 시료가 있는 바늘구멍만 한 데다 조사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광학, 전자기학, 기계, 전기,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해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부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앵커] 요약해서 말씀해주셨지만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셨을지 짐작이 되는데요. 이렇게 어렵게 개발한 4차원 전자현미경을 이용해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신소재 물질의 변형까지 관찰하셨다고요?
[인터뷰] 네, 차세대 전자 소자의 소재 물질로 주목받은 흑린이 외부 빛에 반응해 주름처럼 구겨지는 전 과정을 최초로 실시간 포착했습니다. 흑린은 그래핀과 비슷한 2차원 물질, 즉 원자 수준의 두께를 갖는 고체 물질인데요. 전기적 특성을 쉽게 바꿀 수 있어야 소자 재료로 쓰일 수 있는데, 흑린은 외부자극으로 미세구조가 변형되면 전기적 특성이 바뀌는 특이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또, 탄소 원자 대신에 인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가로세로 방향으로 구조가 달라서 전기전도도, 열전도도 등의 물성도 축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갖는데요. 흑린과 같은 얇은 물질은 주름이 잘 생기고 주름이 잡혔다는 것은 즉,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이므로 물성에도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차원 물질의 주름을 조절할 수 있으면 물성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흑린이 외부 자극에 반응해 순간적으로 구조가 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직접 관찰한 연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4차원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흑린에 빛을 쪼여 에너지를 집어넣고, 실시간으로 축에 따라 주름이 비대칭적으로 잡히고 풀리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런 연구를 통해 흑린을 구성하는 인 원자가 더 빼곡하고 탄탄하게 쌓여 있는 방향으로 구조 변형이 잘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흑린이라는 물질이 원자 수준으로 얇아서 이런 미세한 구조를 관찰하기가 어려웠는데 4차원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가능하게 됐다, 이런 말씀이신 거군요. 이 4차원 전자현미경을 새로운 분야에도 활용하고 계신다면서요?
[인터뷰] 네, 퀀텀닷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퀀텀닷은 가시광선을 흡수해 다양한 빛을 내는 특성으로 디스플레이의 소자로 실생활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의 색깔과 수명을 결정하는 정확한 요인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이 4차원 전자현미경에서 전자빔에 의해 물질에서 빛이 방출하는 \’음극선 방출 현상\’을 접목하면 퀀텀닷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빛을 내는 규칙성과 특이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앵커] 디스플레이의 발광 소자인 퀀텀닷이 어떤 빛을 얼마나 오래 낼 수 있는지 그 원리를 알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앞으로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4차원 전자현미경을 통한 나노 연구, 어떻게 발전할까요?
[인터뷰] 현재 4차원 전자현미경의 해상도는 아직 원자 하나의 움직임을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장비 개발의 측면에서 시공간 해상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고요. 결국, 해상도가 올라가면 DNA나 단백질 등의 생체물질 등 더 다양한 물질의 구조나 기능에 대해 더욱 정밀하게 탐구할 길이 열리리라 기대합니다.
[앵커] 살아있는 생체물질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면,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터뷰] 4차원 전자현미경 개발은 2007년 제가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경험을 토대로 기존 현미경의 성능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4차원 전자현미경을 울산과학기술원에 설치하여 현재 열심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몇몇 연구실에서만 설치,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첨단 연구 분야인데요. 물리와 화학을 동시에 좋아하는 연구원을 모집하는 게 꽤 힘들기도 하고, 연구가 잘 안 풀릴 때도 있지만, 이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선도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연구에 정진하고 전문 연구인력도 많이 양성하고 싶습니다.
[앵커] 교수님 추가로 전자현미경 기술이 바이오산업에서 굉장히 각광 받고 있는 그런 기술이라고 들었거든요. 혹시 협업이라든지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는 게 있나요?
[인터뷰] 예. 현재 표준과학연구원의 생체물질 이미징에 관련돼서 우리 몸에 바이러스나 외부의 균들이 들어왔을 때, 그 균들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혹은 이런 균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가 약을 섭취하거나 그러는데요. 그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려면 마치 구조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이런 바이러스나 균들의 개수를 셀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희 전자현미경을 굳이 초고속 전자현미경일 필요는 없지만, 전자현미경의 고해상도를 활용하게 되면 몸의 바이러스나 단백질, 기타 등등의 생체물질을 개소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표준과학연구원의 바이오 그룹과 함께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말씀을 들으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만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만큼 앞으로 좋은 연구 성과 기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울산과학기술원 권오훈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